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예의는 복종이 아닌 존중이 되어야 합니다.
    카테고리 없음 2015. 11. 15. 01:14

    대한민국의 예의는 여전히 연장자와 권력자에 대한 무조건적인 복종을 의미합니다. 일제시대의 수탈을 거치고 한국전쟁을 거치고 그 못살던 60,70년대를 거치면서 피치못하게 제한된 자원은 일부에게만 주어졌고 소외된 사람들의 질서를 강제하는 논리로 사용된 것이 유교적인 예의입니다. 장남에게 모든 리소스를 몰아 주어도 예의를 지키는 일이고, 상급생에게 불합리한 매질을 당해도 예의고, 조직장/상급자에게 불합리한 조치를 당해도 꾹 참아내는 것 그것이 한국인이 배운 예의였습니다. 일단 1971년에 태어난 제 세대는 그랬습니다.

    2015년 대한민국은 경제적으로 일정 수준에 도달한 나라가 되었지만 여전히 예의는 복종의 망령을 띠면서 사람들의 의식구조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은 제자리에 가만히 있으라는 선원들의 말에 복종하여 수장 당하고 수많은 하위 직급 직장인들은 상사 눈치를 보며 회식 자리를 지키고 야근을 눈치껏 합니다. 여전히 대학생 신입생 환영회에서 구타와 복종 의식의 부작용들이 뉴스화되고 있고요.  우리는 복종이라는 예의에 사로잡힌 유령 인간들입니다.

    만약 우리나라가 나라의 존립조차 어려운 국가 상태라면 집단주의하에 복종을 주입시켜 해당 리소스를 일부에게 집중시키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가 어떤 사회입니까. 삼성의 모바일폰 하드웨어 기술이 애플의 창의력의 소산인 iOS 소프트웨어 기술에 발리는 시대입니다. 지금처럼 복종만 하고 집단주의를 제일로 하면 경쟁의 최전선의 기업들은 국제 경쟁력을 갖추기 어렵습니다. 도태됩니다. 벌써 기업들은 살기 위해 사원들의 창의력을 올릴 수 있는 평등한 문화를 도입하기 위해 많은 노력들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있는 네이버에서 불고 있는 책임근무제, 그리고 직급 파괴, 님으로의 호칭문화 변경의 문화적인 노력이 그 한 예입니다. 

    복종의 개념인 예의만으로는 모두가 손해를 보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해당 조직은 발전하지 못합니다. 가장 수혜자였던 조직의 연장자와 권력자도 조직이 발전하지 못하면 무사하지 못합니다. 젊은 층과 하급자도 마찬가지로 계속 손해만 보고 있지 않습니다. 열정 페이나 비정규직 문제를 수면위로 올리면서 계속 반항하고 있습니다.

    복종의 예의는  그룹간에 벽을 쌓을 뿐입니다. 제가 44년을 살면서 우리나라에서 세대간에 잘 어울리는 것을 본적이 없습니다. 1살 차이만 나도 선후배로 그룹이 갈리면서 깊은 벽이 생깁니다. 마치 잘 어울리는 것 같지만 그것은 표면적인 것 뿐입니다.

    이제 예의는 존중의 의미로 전환되어져야 합니다. 연장자, 권력자도 존중받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무엇보다 존중은 당사자가 하는 능동적인 의미입니다. 존중받을 필요가 없는 사람에게 존중을 할 필요는 없다는 말입니다. 말도 안되는 복종을 강요하는 학교 선배들, 나를 무조건 따르라는 직장 상사들, 형에게는 무조건 복종하라는 가정내 논리들, 교수의 권위에 무조건 복종하는 이상한 논리들은 존중되어서는 안됩니다. 맞서 싸워야 올바른 사회가 이룩됩니다. 

    요즘 국정화 교과서 이슈로 말이 많습니다. 부끄럽게도 고등학교 학생들이 능동적으로 데모하는 모습을 보면서 찬사를 보냅니다. 우리 사회는 살아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저들을 존중해야 합니다. 존중의 예의를 가져야 합니다.




Designed by Tistory.